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사랑이 없는 신앙이나 구제는 속빈 강정과 같이 위선적인 것이고 거짓입니다. 아무리 신앙적으로 많은 일을 해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고 이런 것으로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랑은 기독 이단을 분별하고 교회 내의 잘못된 부패를 알아보게 하는 잣대입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은 것, 교회 건물이 큰 것, 교회 목사의 설교가 좋은 것과 병이 치유되는 것 등을  좋은 교회의 기준을 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은 거짓된 판단 기준으로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의 기준은 교회가 예수님의 명령인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준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제자 훈련으로 사람이 변화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체험하고 실망하던 중에 기존의 제자 훈련이 잘못된 촛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때로 성경 공부나 양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진정한 제자의 삶을 배울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제자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제자 훈련을 받지 않은 초신자 보다도 더 이기적이고 차갑고 교만한 모습을 종종 발견합니다. 제자 훈련을 전문적으로 시키는 선교 단체에 소속된 학생들이나 리더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성경과 전도와 제자 훈련을 받았는데 가정생활에서나 사생활에서 사랑의 실천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선교단체의 폭력적이며 비인간적인 조직이 외적인 성과는 낼 수 있겠지만 진정한 삶의 변화는 일으키지 못합니다. 사람을 변화 시키는 기적을 일으키는 제자 훈련은 매일의 삶속에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 할 때 부부 생활과 자녀 교육과 대인 관계와 교회와 사업 위에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요셉과 같이 가족과 세상을 구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자 훈련이 사랑을 실천하는 목표로 이루어 지면 온전한 성품을 가진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배우는 것 보다 사역 방법론을 내우고 사역에 헌신을 촛점으로 하는 것을 바른 제자 훈련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방법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동적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사랑 때문에 낮고 낮은 죄 많은 세상에 오시고 사랑으로 허물 많은 제자들과 함께 계시고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 가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사랑하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 처럼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처 주신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의 열매가 없는 기독교인의 삶은 생각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는 사랑에 관하여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관한 첫 두가지 긍정적인 명령은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한 것입니다. 상대방의 죄와 허물과 나와 다른 취미와 기질과 성향에 대한 참음입니다. 친절한 것은 대인 관계에 있어 예절이 바른 것입니다. 타인의 연약함을 감싸주고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참아 줍니다. 그리고 말고 행동이 상대를 배려하는 친절함이 베어 있습니다.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딸 예원이가 직장을 다닐 때 자주 지나는 지하철 계단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가 불쌍해서 가지고 있던 현금 전부인 10불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기가 가면 상점 주인이 토스트를 안팔 수도 있으니 예원이에게 다시 돈을 돌려 주면서 토스트를 사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예원이는 토스트를 사서 봉투에 거스름 돈과 함께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으 토스트를 6불에 샀으니 남은 거스름 돈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원이는 거지에게 거스름 돈이 토스트가 담긴 봉투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원이 스승인 조엘 선생님은 미국에서 최초의 칼러 사진 작가인데 이 홈리스가 목욕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가서 목욕을 하도록 배려 하였습니다. 예원이는 지하철에서 무거운 집을 들고 쩔쩔매는 나이든 분을 만나면 얼른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것을 도와주고 내려 온답니다. 사랑은 무조건 적으로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는 행동을 말합니다.

사랑에 대한 설명 중에 나머지 것들은 주로 상대를 괴롭히지 않는  행동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마치 모세의 십계명에서 이웃에 대한 5가지 사랑을 하지 말라는 명령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으로 표현한 것 같이 고린더 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8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3번째로 투기, 자랑,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의 성공이나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고 교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나 이웃이 성공 할 때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 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며 우쭐 거리며 교만한 자세를 갖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가져다 주는 무례함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조그마한 불편함도 주지 않기 위하여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 행동으로 인하여 이웃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모든 행동과 말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 준수 해야 할 예절과 도덕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모든 약속을 잘 준수하는 것으로 무례함을 범치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웃을 이용하기 위한 행동을 근절해야 합니다. 모든 행동의 근원에 이웃이 잘 되도록 이타적인 동기를 가져야 합니다. 자동차 사고를 내었을 경우에 자신이 상대방에게 잘못을 했을 경우 정중하게 피해를 보상해 주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물질적인 손해를 입게 되었을 때 상대방에게 무례한 방법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사랑은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생활과 사회 생활에서 자기 분을 못이겨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모양의 악한 것들을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내게 큰 피해를 입혔다고 해서 성내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게 피해준 사람이 벌을 받도록 생각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재물을 깨끗하게 벌고 정당하게 쓰는 행위입니다. 사랑은 뇌물이나 속임으로 재물을 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번 재물이 아닌 공짜나 더러운 돈을 가까히 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헌금과 선교비 등의 출처를 투명하게 하여 부정하고 불법한 돈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지켜야 할 법과 도덕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모든 불법과 불의를 떠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 재물은 항상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준비 되어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여 재물을 벌 뿐만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돕는 곳에 사용해야 하는 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의 삶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모든 외적인 어려움과 영적인 어려움을 견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가지 영적인 시험을 이기신 것 같이 물질과 질병과 관계의 여러움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귀가 주는 영적인 싸움을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마귀에 굴복하여 재물을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귀를  숭배함으로 얻어지는 기적과 명예를 얻는 것등을 부정해야 합니다. 마귀로 부터 얻어지는 모든 영적인 권세와 명예와 재물을 거부하고 청빈하고 견손한 삶이 사랑의 삶 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끝까지 믿어 주고 상대방이 변화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님의 형상을  닮아 가고 있고 변화 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주 특이한 사람이 됩니다. 별과 같이 빛나기 때문에 어디서도 발견 할 수 있는 귀중한 사람이 됩니다. 어떤 곳이고 이런 사람이 들어 가면 확 눈에 들어 오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특별한 예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