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죄로 인하여 멸망할 인간을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시 처음 죄를 짓지 않은 아담으로 회복 되는 것입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어떤 죄인도 예수님께 돌아 오면 돌아 온 탕자처럼 구원을 받습니다. 즉 죄를 범하지 않은 아담으로 회복 되는 것입니다. 죄인 되었던 사람이 하나님께 예수님을 통하여 돌아 오는 것은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을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들 앞에 창세기에 있었던 것과 동일한 선악과 나무가 서있습니다. 이 나무의 선악과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신의 성품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로봇과 같이 프로그램 한데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순종과 불순종 가운데 하나를 선택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는 죄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있습니다. 즉 선택의 자유는 있으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불순종의 열매로 재물, 명예, 성적 유혹등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십계명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즉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요약 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주일 성수를 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신을 절대로 만들거나 숭배하지 않습니다. 이웃 중 가장 가까운 이웃은 부모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 때문입니다. 이웃 사람들을 살해, 구타, 도적질, 속임, 모함, 성추행 하지 않는 것으로 이웃들에 대한 소극적인 사랑을 표현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람은 무례히 행치않고 사랑은 자기의 유일을 구하지 않고 사랑은 불법을 좋아하지 않고 사랑은 의와 함께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바리세인과 사두게인등과 같이 외식하는 사랑의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내면 깊숙히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기도, 금식, 헌금, 구제, 말씀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남이 보는 앞에서 종교 행위를 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도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가운데 조용히 행해야 합니다. 그런 은밀한 행위 속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성도 중 이 선악과를 따먹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선악과를 많이 먹고 죄악 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가 많이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 보다는 하나님께서 내리는 저주 가운데 고통하며 살고 있는 성도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얻어지는 축복과 기적의 삶 대신 저주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만일 성도가 죄를 지으면 혹독한 죄에 대한 댓가와 처절한 형벌과 영원한 지옥문으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도들을 매일 죄를 회개하고 죄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지고 다시 예수님께 돌아 와야 합니다. 돌아 오지 않을 때는 영벌이 있습니다. 아담 부부가 죄를 지었을 때 받았던 형벌과 그 자손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노아 이전의 사람들이 홍수로 멸망 당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는 우리 앞에 있는 선악과를 바라 보고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가 선악과를 전혀 따먹지 않았을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등에게 있었던 하늘의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신비의 능력과 지혜를 가지시고 계시기 때문에 자신을 따르는 성도들을 자신이 소유한 능력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도대체 끝을 알 수 없는 능력과 신비로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