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가짜 복이 많이 판칩니다. 복 받으라고 외치는 목사님들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목사님의 삶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거룩한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들이 말하는 복은 세상적이고 물질적이고 명예에 관한 복입니다. 약장수와 같이 그럴싸한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을 유혹하는 목사들이 판칩니다. 돈과 명예를 획득하기 위하여 성경을 이용하는 거짓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진정한 복은 세상의 물질과 명예을 지칭하는 복이 아닙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무조건적으로 받는 복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자신을 변화 시키는 고난의 길과 사람들이 많이 걷지 않는 좁은 길을 걸어 간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을 받을 수 없는 넓은 명예와 물질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형식적으로 예수님만 영접하면 모든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값싼 복음이고 복음을 변형 시킨 형식적인 이단적 요소가 가득찬 복입니다. 예수님만 영접하면 모든 복을 당연히 받고 더 이상의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구원파적인 복음입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영접은 가짜 영접일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을 타락 시키는 거짓 신학입니다. 이런 타락한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양의 탈을 쓰고 늑대와 같이 양들을 잡아 먹기 위한 수단입니다. 때로는 매 설교 때 마다 지옥을 강조하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헌금을 많이 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목사 자신은 물질욕에 가득차 있으며 신도들의 재물을 약탈하기 위하여 별의 별 약장사 술수를 모두 이용합니다. 이런 물욕과 사심이 가득찬 이기적인 이단 약장수 목회자들을 피하기 우해서는 예수님의 의를 바르게 이해 하고 삶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첫 설교를 통하여 8가지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아래와 같은 예수님의 첫 설교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은 마치 축복을 끌어 당기는 자석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제1복) Mat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 영적인 갈급함이 있는 사람
제2복) Mat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자신의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사람
제3복) Mat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타인의 죄에 대하여 너그러운 마음을 품고 용서하는 사람
제4복) Mat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바름을 추구하는 사람 
제5복) Mat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어려운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을 도와주려하는 사람
제6복) Mat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죄를 미워하는 사람
제7복) Mat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인간 관계를 화목하게하는 사람
Mat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바름을 추구하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 

Mat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Mat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첫번째에서 세번째 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런 요소들이 복을 받기 위한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타인의 죄에 대하여 너그러운 사람은 복을 받을 수 있는 기초 공사가 끝난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을 세상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하여도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 대하여 온유한 마음 즉 타인의 잘못에 대하여 지나친  책망 보다는 용서를 먼저 합니다. 예수님의 온유하심을 본받아 타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4복과 5복은 서로 상충하지만 공존하는 복 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사람을 볼 때 선악의 관점에서 보고 또한 긍휼하게 여기는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상대편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상대방을 긍휼의 관점에서 보는 것 또한 없어서는 안될 조건입니다. 의만 있고 긍휼이 없는 사람은 율법으로 사람을 정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긍휼함을 품고 있는 사람은  죄인을 용서 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4복은 복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진정한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는 세상의 의와 정 반대 것으로 기독교인의 가장 중요한 윤리 기준입니다. 때문에 8복에서 이런 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의를 추구하다가 핍박을 받을 때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6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7복이 열매로 나옵니다. 즉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인간 사이에 있는 불화를 없앨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불결한 사람은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나쁜 사람입니다.

 마지막 8복은  모든 복의 꽃입니다. 예수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삶입니다.

 의를 추구하며 그 때문에 고난을 받는 사람의 축복(4복과 8복)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의를 갈망하고 추구하는 사람의 복과 의를 추구하고 갈망하다가 당하게 될 사람이 받는 축복을 중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중요하면 2회에 걸쳐서 의를 통한 복을 말씀하시는지요. 그러나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는 세상의 의와 다릅니다. 8복을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자신이 정의하신 의에 대하여 다음 구절에 연이어서 다시 설명하십니다.

 살인, 간음, 맹세, 보복에 관한 의입니다.

 살인: 직접적인 살인 보다는 악한 생각을 가진 것에 대한 것, 악한 욕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며 이런 생각과 말만으로도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인들과 목사님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불의입니다. 설교을 할 때 욕을 하는 목사는 아직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불의는 구원의 확신과는 달리 지옥에 갈 것이라 엄명하십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이 명령을 어기면 안됩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이 명령을 어기면 지옥에 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엄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기독교 윤리입니다.

 간음: 마음으로 여자를 보고 사악한 음욕을 품는 것은 간음이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중요한 지 죄를 범하면 눈을 빼어 버리고 손을 잘라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철저하게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유명하던 조용기목사가 파리의 나비 부인이라는 정귀선씨가 쓴 책으로 인하여 실망을 안겨 주었는지요. 간음은 파멸의 구덩이로 달려가는 지름 길입니다. 어떤 형태의 이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십니다.

 맹세: 이것은 거짓말과 연결된 것입니다. 지키지도 못할 거짓말을 상대편을 속이기 위하여 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자신의 명예나 하나님의 명예나 교회의 명예로 약속하며 안되고 한번 약속한 것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신용이 깨어지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선전해서도 안됩니다.

 보복: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보복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중요한 의의 핵심으로 세상과 정 반대의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의입니다. 절대로 내게 잘못한 사람에 대하여 보복을 하지 말고 보복할 생각 조차 갖지 말고 내게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 더욱 많은 피해를 자발적으로 받으라 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완전히 정 반대의 행동일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를 피해 가면서 동굴속에서 죽일 기회가 있어 옷자락만 자를 것을 회개 한 것 처럼 행동하라는 말씀이십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를 신뢰하고 하나님만이 심판자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내 옆에 놓아 두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주위에 나쁜 사람을 판단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나에게 악행을 하여도 그냥 놓아 둘 여유가 생기고 오히려 그들이 장차 받을 고난과 형벌을 생각하며 긍휼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도미니카 공화국 제 이웃집에 살고 있는 미국 선교사도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 나오다 돈을 달라고 하던 괴한에게 머뭇거리다 선교사의 아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선교사의 아들에게 총을 발사하고 도망쳤습니다.  총을 들지는 않았으나 강도와 같이 나의 명예와 물질에 대하여 손해를 입히려 하는 사람에 대하여도 즉시 다 주고 더 주어 버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물질과 명예 때문에 다툼이 일어 나는데 이런 사건에 절대로 끼어 들지 말고 다 줘버리고 일어나 나와 버리라 명령하십니다. 절대로 보복을 생각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줘 버리라고 엄명하십니다. 이것이 세상과 정 반대의 기독교 윤리입니다. 이런 의를 소지 할 때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고 하니님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게 됩니다.

 이런 예수님의 의가 요사이 많이 회손 되고 있습니다. 돈과 여자와 명예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목사와 선교사와 신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 슬픈 일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귀로 들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현실에 있어 직접 적용해야 합니다. 내게 닥친 문제의 키는 예수님의 의를 실천하느냐 하지 못하느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재물을 미워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삼박자 축복은 거짓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재물을 미워하는 좁은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모든 재물을 하나님께 100% 드리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