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선교 전략

   한국 침례교 해외 선교부 선교사로 중남미 지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12가정은 아르헨티나 권오묵,  파라과이김돈수, 파라과이고현묵,  멕시코 민주식, 브라질 소진석, 브라질 홍순표, 도미니카 김영구, 과테말라 연재관, 니카라구아 이상근, 파나마 고대권, 베네주엘라 정경섭, 미국 서용남선교사 등이다.

   1991년에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파송 되어 원주민 사역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통하여 중남미 가톨릭 지역의 선교 전략에 관하여 쓰고자 한다. 중남미 지역은 아주 잘 준비된 추수 지역 중의 하나이나 현재 한국 교회는 가톨릭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중남미가 한국과 지리적으로 먼 곳에 위치한 관계로 필리핀 지역을 제외한 가톨릭 선교에 대한 열정이 높지 않은 실정이다. 중남미 지역 선교 정보와 가톨릭에 대한 이해와 현재의 가톨릭 교리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기독교와 가톨릭의 차이점을 밝히고 가톨릭과 기독교가 갖고 있는 상호 태도와 가톨릭 선교 방법론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중남미 (Latin America)국가의  정의

지역 전체 면적은 20,537,000 sq.km(남한의 약207)으로서, 이는 전 세계 육지면적의 15.1%에 해당한다. 중남미 전체 지역은 아래와 같이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을 할 수 있다. 중남미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33개 국으로 구성된다. 지역적으로 아래와 같이 중미, 카리브해, 남미 등 3부분으로 나눈다.

A.    중미(Central America) 8국가
라틴 아메리카에 속한 중미는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구아,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파나마, 벨리체

B.    중미 카리브해에 속한 섬나라 국가들로 13국의 독립국가가 있고 약 7000개의 섬으로 구성

 바하마,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자메이카, 안티구아 바부다, 도미니카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그레나다,바베이도스, 트리니다드토바고, 세니트키츠네비스

C.    남미 12개국

볼리비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페루,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    파라과이, 가이아나, 수리남, 칠레

 

2. 중남미의 역사

   첫 번째 시대는, 고대 시대에서부터 1492년까지의 시대(pre-Columbian times: ancient past to 1492)로서, BC 20,000여 년부터 베링 해협을 건너온 이주자들을 주축으로 중남미의 거주자로 정착해 나간 것으로 본다. 콜롬보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당시에 존재했던 3대 문명으로는, 중앙 멕시코 고원지대에 14세기에 세워진 아즈텍(the Aztecs)제국과, 4세기-8세기에 유타칸 반도(남부 멕시코와 과테말라 지역) 마야(the Maya)제국, 그리고 15세기에 안데스 지역에 형성된 잉카(the Inca)제국의 문명으로 볼 수가 있다.  

   두 번째 시대는, 정복과 식민의 시대(the conquest and colonization: 1492-1821)로서, 서구 유럽의 기술과 문명과 문화의 소개 및 도입으로 문명화에 기여하였으며, 교육제도와 언어의 도입(스페인어, 포르투갈어)과 함께 Roman Catholic을 전파 하였다. 원주민 문화의 파괴와 원주민의 착취와 유럽의 질병을 전염 시키게 됨으로써 수백만 명의 인디언 원주민들이 면역성 부족으로 죽게 되었다.

세 번째 시대는, 격변의 시대(1821-1930)로써, 1824년에서 1880년까지는 식민지로부터의 독립과 정착과정 중의 격변의 시대가 되었고, 1880년에서 1930년은 평화와 개발 및 안정의 시대의 시작이자, 중앙 집권적인 사회주의 및 군부통치의 실험의 시대였다.  

   마지막 네 번째 시대는, 현대시대(1930- 현재)로써, 1960년대와 70년대는 극우 군사정권의 득세와 함께 경제적인 어려움의 시대였으나, 1980년대와 90년대는 근대화 및 현대화의 시대가 시작이 되었으며, 오늘날은 중남미 전역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3.중남미 기독교 역사

   중남미의 기독교 선교는 19세기 말까지 접근불가 지역이었고 잊혀진 지역이었다. 법적으로 어떤 종교의 입국도 허락하지 않아 로마 가톨릭 교회의 독무대였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 이후 당시 세계의 큰 영향력을 가진 영국을 업고 영국 선교사들이 성서공회, YMCA등으로 입국하기 시작하였고 선교가 은밀하게 혹은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1916년 파나마에서 열린 국제선교대회에 보고된 개신교인의 숫자는 아르헨티나 4247, 칠레 884, 우루과이 781,페루 326, 콜롬비아 157, 볼리비아 136, 과테말라와 베네수엘라가 각각 40명이었다. 당시 미약했으나 미국 선교사들이 사역한 뿌에르토리코12084, 쿠바 15638, 멕시코22282, 브라질 49623의 교인이 생겼다. 1945년 세계2차대전 이후에는 영국의 선교사들은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국제영향력을 얻은 미국의 선교사들이 주로 사역을 맡아 본격적인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중남미에 가까워서 미국 교회가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였으며, 미국선교사들은 선교현장에다가 엄청난 물량을 부어 중남미의 복음화에 기여를 담당하여왔고, 이들이 세운 신학교, 교육기관, 병원 방송국, 선교센터, 사회복지시절 기관 등이 수없이 많이 있다. 이 선교현장은 한마디로 미국 교단과 선교단체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었다. 허지만 대표적인 미국 선교운동을 주도하던 침례교나 감리교, 장로교의 영향력은 중남미에서 약하고 성장이 둔화되어 왔다. 반면 이 지역에 자체적으로 토착화된 오순절 교회가 각국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래서 중남미 선교지는 현상적으로는 분명히 열린 선교지이며 당장 추수할 수 있는 선교지이고, 곧 재생산이 가능한 지역이라고 말한다.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에 중남미에서 일어나 복음주의 개신교회의 성장은 극적인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대략 7,000-8,000만 명의 기독교 신자가 남미에 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대략 15%를 상회하는 수치이다. 각국마다 경제 사회적인 요인이 다르나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고, 매년 교회는 성장하고 있다. (참조:  황윤일 선교, 21세기 본 교단의 중남미 선교전략)

 

4.가톨릭에 대한  이해

   기독교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교 개혁을 통하여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가톨릭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종교 개혁을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A. 종교 개혁

   종교 개혁은 당시의 각 나라에서 교황권에 대한 반대와 부패한 가톨릭의 교리와 그 종교 행습에 대한 반대로 일어난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구원으로 이르는 길은 성사에 있다고 하고, 특히 회개(고백)의 성사가 인간을 속죄로 인도하는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 속죄는 선행으로 얻어지는 데 그것을 쉽게 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고안하기에 이르렀다. 1515년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의 성 베드로성당 건설을 위하여 면죄를 고시하고, 독일에서 면죄부의 판매를 허락하였다. 면죄부는 <상자 속으로 던져 넣은 돈이 짤랑 하고 소리를 내는 순간 구원을 받는다.>고 선전되어 마구 팔렸다. 루터는 사람들이 면죄부를 삼으로써 모든 벌과 죄책으로부터 해방되며 확실히 구제된다고 믿는 사실에 종교적 위기를 느꼈다. 금전에 의한 면죄부의 구입이라는 안이한 행위에는 <회개>라는 그리스도신자의 기본적 행위가 완전히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루터의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는 교황의 권위, 사죄권, 연옥, 면죄부에 관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였다.(1517) 라이프찌히 논쟁(1519)은 엑크가 루터로부터 교회회의도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교황이 구원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견해를 끌어낸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 결과 루터는 이단자라는 낙인이 찍힌 후 파문의 위협을 받다가, 그 후 공개적으로 교황의 교서를 불사르자 파문 당하였으나 종교 개혁의 불길은 스위스, 프랑스, 영국 등 전 유럽 국가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1521). 종교 개혁을 통하여 재발견한 진리는 첫째, 신약성경 믿음으로 칭의 되는 원리의 재발견이다. 둘째,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권위를 제도 교회나 사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인정하여 중세 천년 동안이나 가두어둔 성경 말씀에 얽혀있는 사슬을 풀어 모든 사람이 접할 수 있게 하였다. 셋째, 성경의 권위( 138:2)와 성도들의 제사장직 (벧전 1:9)에 대한 강조로 인해 로마의 권위들(교황, 사제, 전통 등)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넷째, 종교개혁의 결과 전세계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외국의 독재자(바티칸 교황)가 더 이상 각 나라들의 그리스도인들을 통제하지 못하게끔 되었다는 사실이다.

   루터교와 개혁교회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 당국의 권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으며, 그 열매로 종교의 자유를 가져왔고,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켰으며, 자본주의 제도를 시도하여 중산층이 생겨남으로써 가톨릭 전체주의의 몰락을 가져왔다. 종교개혁 이후 전세계의 역사는 개신교를 채택한 국가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며 이들의 선교 열정으로 전 세계에 복음이 확산되었다.

 

B. 가톨릭의 대응

   가톨릭은 기독교에 대한 파문과 처형과 전쟁 등으로 저지하려고 하였지만 기독교의 신자가 늘어나고 세력이 점점 커지자, 가톨릭은 세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잘못된 점을 고치는 등 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이를 반종교 개혁이라고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를 소집하여 교황의 권위를 재확인 하면서 성직자와 교회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교황을 정점으로 하여 신교에 대항해 나갈 것을 결의하였다.

   한편, 가톨릭 교회의 부흥을 목적으로 한 선교 단체 예수회가 성립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540년에 에스파냐의 로욜라가 조직한 예수회는 로마 교황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순결·청빈·복종 등을 생활신조로 삼고, 군대를 조직하는 등 엄격한 규율로써 가톨릭의 옹호와 포교에 힘썼다. 예수회는 유럽에서 교세를 회복하기 위하여 신대륙(미주 대륙)과 극동 지역까지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지역까지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중남미 식민지 개척과 가톨릭 포교 활동을 함께 하였다.

 

5. 현재의 가톨릭 교리

   루터의 종교 개혁 당시 때보다 루터가 지적한 교리적으로 잘못된 점들이 개혁된 것이 아니라 훨씬 악화되었고, 전혀 변화 되지 않았다. 기독교는 가톨릭을 개혁 시킨 것이 아니라 가톨릭의 이질적인 교리로부터 나온 것으로 가톨릭과 완전히 분리하여 초대 교회의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가톨릭 교리는 현재까지도 아래와 같은 중세 보다도 더욱 발전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

A. 우상숭배와 미신

   성서의 가장 중요한 십계명의 제2계명을 어겼다.(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우리는 결코 '조각한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가톨릭은 성인과 성상을 성당과 가정 집에 가득 채우고 있다. 가톨릭은 신도들에게 우상인 성화, 성인과 마리아 조각상등에 숭배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B. 교회와 교황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사이를 차단

   첫째 로마 가톨릭 교회 자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끼어 들어오고 있다. 가톨릭 교회 자체가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 증거로서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지만,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일컬어진다. 세 번째 드러난 증거는 사제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 가톨릭의 사제들은 특별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모든 신자들의 보편적 성직체계를 믿지 않는다. 성직자(사제)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가톨릭 교회에서 훈련 받고, 교회의 성직수임을 받아, '사도적 계승'에서 나오는 권위를 부여 받은 사람이어야만 한다. 네 번째의 증거는 로마 가톨릭주의의 마리아 숭배가 놀라울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C.구원의 영광과 완전성과 충분성을 훼손

   가톨릭은 구원관에 있어 성경과 전혀 상반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 즉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는 데 있어 스스로 기여할 부분이 있으므로, 죄 투성이인 인간이라도 선행이나 공적을 쌓는 행위가 가능하다고 한다. 기독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와 같으며', 혹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 기록하였듯이, '배설물'()과 같아서 거부해야 할 것이요, 무가치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침례를 통해 의롭게 된 다고 가르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의식이 없는 영아라 할지라도 전혀 문제되지 않으며, 그들도 침례로 의롭게 되고, 그들의 원죄가 없어진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의가 아니며, 그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침례받은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의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고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고 믿는다.

   침례 후 죄 문제는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이다.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 사제에게 가서 죄를 고백(고해 성사)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연옥이라고 불리는 곳을 교리화 하였다.. 용서받지 못한 침례 후의 죄가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 죄를 씻기 위해 연옥으로 가게 된다. 죽은 나의 친척들이 나를 위해 기도를 하며 그렇게 하면서 돈을 지불한다. 죽은 자는 온갖 '면죄부들과 온갖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들'과 촛불들과 헌금 등이 필요하다. 돈을 더 많이 낼수록 이러한 죄들이 연옥에서 더 빨리 처리되며 이 사람은 연옥에서 더 빨리 나갈 수 있게 된다고 가르친다.

 

6. 현재의 기독교와 가톨릭의 관계

A. 로마 가톨릭에서 기독교에게 화해 요청

   라틴 아메리카에서 로마 가톨릭은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는 기독교를 이단으로 보고 핍박하였다. 그러나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로마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기독교를 '분리된 형제로' 간주하였다. 1965년에는 바티칸과 WCC의 대표들로 구성된 연합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바티칸 공의회에서 나온 '에큐메니즘에 관한 교서'는 가톨릭 밖의 기독교회들이 선교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대화를 위해 초청할 대상이라고 명시하였다. 또한 '비기독교 종교인들과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에서 비기독교 종교들에 대해 그들의 우상숭배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회개의 필요성을 요구하기보다는 융화적인 자세를 취했다.

 

B. 기독교 내의 화해 그룹

   로마 가톨릭이 초 교파적 협력을 제안하였을 때 개신교는 크게 세 진영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첫째는, 가톨릭과 협력을 긍정적으로 보고 환영하는 자세이다. 성경 번역을 포함해 다른 많은 문제들에서 가톨릭교회와 협력하는 그룹이 있다. 주로 WCC 에 소속된 기독교 교회들이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그러나 WCC에 소속된 교회가 해외 선교에 무관심해지고 타종교와의 대화와 종교 다원주의 입장을 갖는 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그룹에 속한 교단에서 가톨릭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가톨릭 지역이 이미 선교된 지역임으로 선교사를 파송할 필요가 없다고 하여 가톨릭 지역에 선교에 대한 관심을 빼앗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타 종교와의 화해와 대화를 주장하며 선교지에서 선교의 불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미전도 부족 선교 단체에서도 여기에 편승하여 일부 전혀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만을 선교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는, 그러한 최근의 변화가 복음주의자들을 방심시키기 위한 계획된 성형 수술에 불과한 것이라고 믿는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다. 가톨릭의 주요한 교리들은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변화되지 않았고, 따라서 기독교와 대화와 협력을 요청하는 변화된 새로운 모습은 거짓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지나친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문화권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에게 장애가 될 수 있다.

   세번째는,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들이 속한 그룹으로서 이러한 두 양극단 사이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들은 많은 혼돈을 겪고 있다. 그 이유는 기독교도들이 종교 개혁을 통하여 복음주의자들이 될 때 로마 가톨릭을 떠날 때 가톨릭으로부터 이단자로 낙인 찍히고 많은 핍박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독교에서 '분리된 형제'가 될 만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가톨릭에서 기독교와 화해 한다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언제 박해가 다시 재연 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다. 이러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신뢰 관계를 증진시켜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로마 가톨릭에 대한 3가지 관점은 모두 그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가톨릭과 기독교는 많은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할 수 없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는 타종교로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차이점을 인정하고 서로 상대의 종교를 귀하게 여기고 관용하는 태도가 바람직한 것이다 

 

7.잘못된 가톨릭 이해

   일부 한국 목회자들이 가톨릭에 대한 긍정적인 접근과 가톨릭과 성공회 등에서 행하고 있는 관상기도와 뜨레스디아스 등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가톨릭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였고  가톨릭에 대한 이단성과 선교의 필요성에  관하여 미흡하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가톨릭에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의 편협 된 자신의 견해를 한국 교회에 제공하였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가톨릭 선교를 하는데 큰 장애물이 되었다. 그리고 일부 극단적인 선교 지도자들 중에서 미전도족속 선교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가톨릭에 대한 무지로 가톨릭을 기독교과 같이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선교지역에 더 많은 선교적 관심과 자원을 지원 받기 위하여 가톨릭을 진지하게 연구해 보지도 않고 가톨릭을 기독교로 분류하고 선교가 필요 없다고 하는 아주 잘못된 견해를 주장하여 많은 중남미 선교사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는 어리석은 한국 선교 지도자들도 있다.

 

   가톨릭 국가는 모두 같은 기독교 인구 퍼센트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33국가의 기독교 복음화 정도는 모두 다른 것을 아래의 도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선교 전략은 선교사를 다른 나라로 파송 할 수 있는 나라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선교를 받은 모든 나라가 다른 나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선교사를 적극적으로 많이 파송 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현재  중남미 국가 중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이와 같은 나라는 선교사를 지속적으로 배출 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미국 교회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월등하게 한국 교회에 많은 선교사와 선교비를 투자했는데 현재 한국이 세계 선교를 미국과 함께 담당하고 있는 것을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한다. 미국 교회가 한국과 같이 많은 학교와 병원과 신학교를 세운 나라는 세계 어느 곳도 없다. 미국 교회는 한국 교회을 보면서 전략적으로 투자를 많이 한 것으로 생각 된다. 중남미 지역에는 선교사를 스스로 파송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데 특히 브라질과 쁘에르또 리꼬(미국령)와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 등이 있다.

 

8. 가톨릭 지역의 선교 방법론

A. 가톨릭을 적대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가톨릭은 기독교와 절대적으로 다른 타 종교의 범주에 속한다. 가톨릭의 교리는 기독교의 교리와 절대로 일치 할 수 없는 상반되는 교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 기독교와 다르게 가톨릭은 정통 타 종교의 범주에 분류 되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가톨릭과 선의의 경쟁을 할 수는 있지만 적대시 할 필요는 없다. 선교사는 타 종교에 대한 인내와 관용이 필요하다. 교회를 건축 할 때 가톨릭 성당 등에서 되도록 거리를 두고 한다.

B. 가톨릭은 기독교와 차이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종종 가톨릭은 기독교이므로 가톨릭 지역 선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생각은 선교에 큰 장벽을 만든다. 그리고 가톨릭 지역에는 명목상 가톨릭 인구가 약 90%에 해당한다. 우리 한국도 200년 전에 가톨릭이 들어 왔다. 만일 한국 정부를 가톨릭이 장악하였다고 하면 우리 한국도 가톨릭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종교의 자유를 기독교와 같이 누려온 가톨릭은 한국 내에서 숫자적으로 기독교와 현격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톨릭 국가 국민들은 스페인 식민지 확장과 더불어 가톨릭을 의무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종교적 제국주의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톨릭 국가는 정치적인 자유와 종교적인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

C. 전략적인 가톨릭 지역에 집중적으로, 전략적으로 선교해야 한다. 먼저 기독교 선교가 미흡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위의 도표를 참조하여 복음화 율이 10% 아래인 나라에 집중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  미전도족속 선교의 결정적인 약점은 장차 세계 선교를 이끌 수 있는 전략적인 나라에 대하여 소홀한 것이다. 복음화가 되지 않은 소수 그룹 종족에 집중한 결과 세계 선교를 이끌 수 있는 전략적인 나라가 개발되지 않은 것이 현재 기독교의 딜레마이다. 세계 선교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중남미 지역에서 선교사를 파송 할 수 있는 나라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쁘에르또 리꼬 등의 국가는 현재 선교사를 중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으로 파송하고 있다. 쿠바는 잠재적으로 중요한 나라다. 현재 쿠바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쿠바는 중남미 국가의 리더로 교회적으로도 큰 리더십을 발휘 할 수 있는 나라다.

D. 북미주 한인 교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선교사역을 하는 것이 좋다. 미국 디아스포라 교회들은 미국 내의 선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남미 지역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사들을 돕고 있다. 특히 단기 선교팀이 이곳을 방문해서 축호 전도, 노방 집회, 저녁에 복음적 영화 촬영, 찬양집회찬, 성극 율동과 여름 성경학교 등을 통하여 현지 선교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미국과 카나다에 있는 한인 교회들이 중남미 지역 선교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남미 선교사들은 적극적으로 이들 북미주 디아스포라 교회와 협력하여 함께 선교를 이루어 가야 한다.

E. 디아스포라 선교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사도 바울로부터 시작 된 디아스포라 선교는 가장 중요한 선교 방법이나 한국 교회는 초기 선교에 있어 원주민 선교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선교 자원 동원에 있어 많은 손실을 경험해야 했다. 한국 민족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서 교회 중심 생활을 하고 있는데 선교사가 디아스포라 교회를 적극적으로 세우고 협력하여 원주민 선교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세계 선교에도 동참 하도록 해야 한다. 미주와 유럽과 중남미 일부 국가의 디아스포라 교회는 자국 원주민 선교와 세계 선교에 동참하는 좋은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멕시코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과테말라등의 국가 등이 디아스포라 선교의 중요한 나라다.

F. 중남미의 가톨릭 지역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구제 사역을 병행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기 선교팀으로 이 지역을 방문 시에는 구제품을 가지고 가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리고 의료 봉사 활동과 겸하여 선교 사역을 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의 구호 단체들과 협력하여 고아원, 양로원, 방과후 학교, 학교 급식등을 실행하는 것이다. 한국 구호 단체(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들이 외국에  선교사역을 하는 선교사들과 함께 구호 활동을 하고 있데 이들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구호 활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G. 지역에 따라 학교 등을 세워 기독교 교육 사역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가톨릭        지역에서는 어릴 때부터 기독교 교육을 시켜 헌신된 일군을 양육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가톨릭이 아직도 중남미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학교 교육을 가톨릭이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립학교는 가톨릭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켜야 하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잠재적으로 가톨릭으로 분류 되고 있다.  선교사는 교회 개척시 교회에 유치원과 학교를 겸하여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지역에 따라 정부에서 학교를 세워 주도록 요청하는 곳도 많이 있다.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선교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교 설립 전문 기관과 함께 협력하여 일하는 것이 좋다.

  가톨릭 지역은 분명하고 긴급한 추수 지역이다. 이 추수할 지역에 추수할 일군을 보내지 않으면 추수할 곡식들이 썩어 버린다. 벌써 개신교 보다 이단 교단이 크게 성장하고 있어 기독교 선교의 장애가 되고 있다. 지역적으로 비록 한국과 멀리 떨어진 중남미 지역이지만 더욱 가톨릭 지역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일군과 기도와 선교비를 투자해야 한다. 한국 선교사 아시아 선교를 탈피하여 한국과 정 반대인 땅끝에 있는 추수 지역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부 지역에 편중된 선교사를 중남미 추수 지역으로 재배치하고 전략적으로 선교사를 배출 할 수 있는 국가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선교 전략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